라라에는 새로운 삶의 주기를 시작했다.. :: 2005/03/06 16:29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라에를 살릴 수 있는 약을 구하러 갔다오다가 전철 안에서 야야의 전화를 받았다.
라라에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이젠 걷지도 못한다고..
집을 나설때만해도 한가닥 희망이 부풀어올라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고 라라에의 상태를 전해들으며..난 알게되었다.
라라에가 떠나려한다는 것을.
내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아직도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전철 속에 앉아있었지만 라라에와 연결되어 그녀가 내게 하는 말들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져야한다는 두려움에 내 마음은 태풍이 몰아치는 듯 너무나 혼란스럽고 슬퍼서.. 라라에가 영혼으로 전해주는 나를 향한 메세지들을 제대로 알아채기 힘들었고, 아니야, 안돼, 하며 부정하고 외면하려해서 더더욱 캄캄한 암흑 속에서 헤메는 듯한 절망에 빠져가고 있었지만..
내 깊은 마음 속에서 라라에의 작고 따뜻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고있었음을.. 나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타로카드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타로점을 봐달라고 내가 어떻게해야 하냐고, 라라에가 죽음을 선택한것이냐고..제발 알려달라고 울며 부탁했지만.. 그는 그저..자신의 느낌만을 전해줄 수 있다고 했다.
라라에가 나를 무척 사랑하고 있음을..
그래서 라라에는 나를 무척 걱정하고 있고..
내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밖에서 방법을 찾아 돌아다니지말고, 라라에 옆에서 그녀와 대화하며 함께 있어주라 했다.
나는 타로점을 봐주지않는 그가, 살 수있을 거라 말해주지않는 그가 무척 서운했지만..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라에는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본 라라에는 생각보다 괜찮아보였다. 내 마음에도 희망이 생겼다. 어쩌면 오늘밤이 지나면 고비를 넘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라라에에게 밥과 약을 먹이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라라에는 아파서인지 몸을 자주 뒤척이며 자리를 옮긴다. 그래도 다리를 들어서 비척이며 옮겨앉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안도하게되었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다.. 약이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라라에가 창가에가서 누웠다. 같이 누워서 눈을 들여다보며 힘내라고 응원을 했다. 기운이 없어보이긴 했지만..아직은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나는 점점 명확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라라에가 떠나고 있다는걸.. 마음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마음 속으로 라라에에게 인사했다.
라라에 안녕.. 잘가라..
라라에도 대답한다..
왠지 라라에가 안도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야야도 무언가 느꼈는지 불쑥.. 라라에를 안고 있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음을 알았다.
왈칵 눈물이 났다. 울음이 쏟아졌다.
진짜로 작별하는구나.. 또다시 두려워졌다.
라라에와 헤어지는것이, 이제 라라에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슬펐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야야가 라라에를 안고 벽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라라에는 야야의 품에 누워 꼼짝도 안하고 빠른 숨만 쉬고 있었다.
왠지 평화로운 모습에 마음도 안정됨을 느꼈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라라에도 그다지 아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라라에가 잠을 자길 원했다..아픈지 잠도 자질 못하고 멍하니 눈을 뜨고 있는 라라에가 안쓰러웠다..
라라에의 눈을 들여다보며 잠좀 자..잠 자고 나야 빨리 낫지..
라라에가 졸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다..
나도 바라본다.. 라라에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라라에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는 것을 슬퍼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나의 삶과 영혼의 슬픔을 어미처럼 걱정하고..슬퍼하고 있었다.
라라에가 이토록 날 사랑하고 지켜주고 있었는지를 그 순간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동안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건 사람인 나인줄 알았는데..
라라에는 그보다 훨씬 나를 사랑해주고 곁에서 끊임없이 보살피고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다는 것을 안 라라에는 몇분후 육체를 벗고 하늘로 돌아갔다..
다시 라라에를 보았을때 그녀의 눈는 커다랗게 열려있었다..
나는 바보같이 그냥 아까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구나 했다.
라라에가 방금의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떠났다는걸 눈치채지도 못했다.
라라에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이곳 지구를 떠났다..
우리와 함께하는 삶은 이제 그만하고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된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나에게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다정하게 말해주었다..
고마워, 라라에..
하지만.. 다음번에도 널 꼭 다시 만나길 바래..
네가 언젠가 다시 우리 곁으로 와서 함께 지구에서의 여정을 계속하길 가슴 깊이 바래..
꼭..다시 날 찾아와죠..
라라에..
넌 지금 어디쯤에 있니?
복막염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 2005/03/06 13:13
어제 수의사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복막염이 원인이 아닐까... 라는 말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작년 봄인가.... 스케일링을 해주러 갔을때...
라라에의 이빨을 본 수의사가...
사람곁에 살던 고양이라고 하더군요.
어린시절 항생제를 많이 맞으면 부작용으로 이빨이 부식되면서 표면이 울퉁불퉁 해지는데....
라라에의 이빨 상태가 그렇다고 합니다.
복막염의 증세를 완화시켜 주는 치료중에 항생제 치료가 포함되던데...
설마....
수의사 설명이... 길에서 살 무렵 복막염에 감염되었고 그동안 잠복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저희 이전에 다른 사람 곁에 함께 있을때 이미 복막염에 걸려 있었던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복막염 증세를 찾아봤습니다.
일치하지 않는것도 있지만... 구토, 설사 등...
일치하는 것도 보입니다. 발열, 식욕부진, 활력저하, 체중감소 등...
빌리루빈 수치가 증가한다고 하던데...
혈액 검사 결과 빌리루빈 수치가 정상 범위내에서 높은편에 있었습니다.
복수가 생기고....
신장에 이상이 생겨서 신부전 증세가 나타난다고도 합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보고...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BUN, creatine 수치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BUN은 정상범위 내에서 약간 높은편이었지만...
creatine 수치는 정상범위내에서 약간 낮은 편이었습니다.
뭔가... 전형적인 신장 질환과는 다른 듯 합니다.
그래서... 신장 자체에 이상이 생겼던게 아니라... 다른 문제 때문에 신장에 이상을 초래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라에가 길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으니 복막염에 감염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겠죠.
게다가... 상처를 통해서 감염되기도 한다는데...
처음 데려왔을때 옆구리의 큰 상처를 비롯해서 여기 저기 상처도 많았고요.
복막염은...
감염되어 있어도 건강하면 발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면역력이 저하되는 다른 질병에 걸리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발병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간이나 신장 같은 다른 장기의 이상을 동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한동안 저와 테라네 모두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었기에...
라라에가 꾸냥이, 테라에게 시달림을 더 많이 받은 듯 하고...
그 때문인지 라라에가 많이 의기소침 한 것 같았었습니다.
거의 놀지도 않고... 눈치만 보고... 구석에 숨어 있으려고만 하고... 하지만 밥은 잘 먹었는데....
그래서... 라라에의 스트레스가 걱정된다는 얘기를 주변분들께 종종 하곤 했지요.
이 때문이었을까요?
그동안 사람 곁에 사느라고 건강이 좋아져서 발병하지 않던... 혹은 더이상 진행되진 않던 복막염이.... 이때의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 되어 발병한 것일까요?
복막염이 진행되면서 신장에 이상이 생기고 방광염이 나타나고...
그래서인지 소변, 혈액검사 수치는 전형적인 신장질환의 이상상태를 보여주지 않고....
방광염 치료를 했지만...
복막염이 진행되면서 신장과 방광에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방광염 치료가 성공적인 듯 했지만...
복막염이 심각하게 진행되면서 신장에 크게 이상이 생겨 더이상 치료약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빠르게 복수가 차기 시작하고....
그래서 수의사도 마지막에서야 복막염을 언급했던게 아닐까요?
스트레스를 줬던 원인이 꾸냥이와 테라의 괴롭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책망해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고양이간의 다툼의 문제를... 고양이들에게 탓해야 할까요?
밖에서 산다면 더 큰 영역에서 살기에... 맞지 않는 냥이들끼리는 서로 피하면 되겠죠.
하지만 좁은 실내에서 살기에...
제 잘못인 것 같습니다.
고양이간의 다툼의 원인을 찾고... 그 문제를 해결... 아니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지난달.... 라라에의 스트레스가 걱정이 되어... 예전에 사서 읽다말고 팽개쳐 둔 책... 고양이간의 다툼에 대한 책을 다시 꺼내서 읽었었습니다. 너무 늦었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너무 우습게 본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고양이가 원하는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반려인과의 교감이다"라는 말이 자꾸 제 가슴을 찌릅니다.
제가 의심하는 라라에의 사인이... 복막염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달여간... 라라에의 스트레스를... 라라에의 외로움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가장 큰 잘못이고 원인일 것이라는 점이...
너무 괴롭습니다.
미안해... 라라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 라라에가 없군요. :: 2005/03/06 13:04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라라에가 평소에 자주 앉아 있던곳 어디에도 라라에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늘 긁어대던 발톱긁게에도....
느긋하게 잠을 청하던 쇼파 위에도...
꾸냥이와 테라를 피해 숨어 있던 상 밑에도...
내 옷걸이 밑에도...
바깥 구경을 할때면 항상 올라 앉던 화분 위에도...
라라에가 없다는 것이.... 이제 하나 하나 느껴집니다.
아침이면 마치 염소 처럼 울어대며 다가와서 부비부비를 하고 꾹꾹이를 하고...
밥을 준비하고 있으면 밥달라고 보채던 모습...
식욕이 돌아왔던 그때 더 맛있는걸 해줄 걸...
부쩍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요즘... 라라에의 외로움을 더 달래줄 걸...
자꾸 책망만 듭니다.
미안하다 라라에.....
라라에를 소개합니다. :: 2005/03/06 12:39
예전에... 검은고양이 네이버 카페에 올렸던 라라에의 소개글 입니다.
1. 보호자 정보 / 거주지역: 테라네&야야~/인천
2. 이름 : 라라에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까만 고양이 '샤아'에 영향 받은 이름. '샤아'가 등장하는 모 애니메이션에서 '샤아'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여성캐릭터가 있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의 그 캐릭터 이름이 '라라'였음. 하지만, 원작은 못보고 짝퉁 한글 번역판에서 '라라에'라고 써있던 것을 기억하는 바람에... '라라에'가 되버렸음. ㅠㅠ 하지만... "라라~" 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라라에~"라고 부르는게 왠지 더 귀엽게 느껴짐. "라라에~"라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옴. ^^
3. 품종 : 까만 한국 고양이
4. 생일 (혹은 기념일) : 2001년 2월쯤으로 추정
5. 성별 : 여자
6. 눈색 : 주로 연한 녹색이나... 햇빛에 따라 변화무쌍.
7. 불임수술 여부 : 했음.
8. 기타 :
- 부묘&모묘 : 몰라요~~ 구미시로 입양보낸 턱시도 두 아들은 있음.
- 성격적 특징 :
사람이 앉아 있으면 항상 무릎 위로 올라와서 꾹꾹이, 골골골, 부비부비를 한참 한 후에 사람 옆구리에 파고 들어서 낮잠을 푹~ 주무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사람이 쇼파 위에 길게 기대어 앉는 것을 좋아함. 기대서 잘 수 있으니까.... ^o^
먹는것을 무쟈게 밝힘. 길에서 굶주리며 살던 기억 때문일까? 재밌는건... 어쩌다가 먹을 것 한조각을 구하게 되면.... 입에 물고서 "냐~~~아~~~"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쪼르르 달려가는 통에 항상 미수(?)에 그침.
성격 매우 온순. 덩치는 젤 크지만 자기보다 나이 어린 꾸냥이에게 꼼짝을 못함. 예전에 아들내미와 함께 살때에는 꽤 용감했는데... 아들들을 입양 보내고 나서는 소심 아줌마로 변신... ㅡ,.ㅡ
- 신체적 특징 :
5kg이 넘는 비교적 거구... 라고 생각했으나... 까만 고양이들 대부분이 라라에와는 비교가 안되는 거묘임을 알게된 이후에는 아담한 체구라고 생각함. 하지만... 옆으로 퍼진게 좀 많긴 하지... 어찌 보면 근육으로 보이기도 하고... ^^a
발견 당시, 옆구리에 커다란 십자 흉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털에 덮혀서 안보임.
송곳니도 한쪽이 부러져 있음. 뭘 먹다가 부러졌을까.... 아님, 싸우다가 부러졌나?
중요한 비밀인데.... 밝은곳에서 보면 털색이 까만색이 아니라 진한 쵸콜렛색임. ^^ 까만 고양이 맞나?
- 기타 사항 :
2002년 장마가 한참이던 때 잠시 비가 멈춘 틈을 타, 집 앞 골목가게 앞에 두 아들과 함께 앉아서 "냐옹~"거리며 배고파 하던 라라에를 처음 만났음.
비쩍 마르고 여기 저기 상처입고 털도 여기 저기 빠져 있던 불쌍한 모습을 보니... 장마땜에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나온게 아닌가.... 하고 짐작 했음. 마침, 방안에서 컴퓨터로 장마로 죽거나 굶주리는 고양이들 사연을 읽고 있다가 주변에 그런 고양이 있으면 도와줘야지... 하고 있었던 직후 였음. 텔레파시가 통한 걸까?
짐작이 맞았는지... 참치캔 하나에 몸을 맡겨 버렸음. 두 아들 녀석은 돌아가면서 가출을 해댈 정도로 말썽쟁이 턱시도 였는데, 지금은 멀리 구미시로 입양가 있음.
나중에 동네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니... 장마가 오기 전에는 새끼 고양이가 몇 더 있었고 새끼들을 보호하느라 사람들에게 매우 사납게 굴었었다고... 힝... ㅠㅠ
근데,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고양이의 경우 다른 구역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그 구역 고양이들이 괴롭히지 않는다는데... 왜 그리 상처가 많았는지...
암튼, 지금은 무척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안그러니, 라라에? 언젠가는 대답을 듣고 싶다.
쵸콜렛색 고양이임을 숨기기 위해 가끔 위 사진 처럼 흑백으로 올려놓기도... ^^a
옆에서 보면 오똑한 코가 매력이랍니다.
여기서는 눈 빛이 연한 녹색에 황금색이 좀 비치네요.
오호~ 생각외로 늘씬하죠? ^^
일광욕을 즐기는 라라에~
라라에는 밀림(?)속에 있을 때가 젤 멋지답니다.
라라에를 기억하며... :: 2005/03/06 03:53
어제... 정확히 3월 5일 저녁 10시 20분에 라라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무섭도록 담담합니다. 믿기지가 않아서 일까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록을 시작하려 합니다.
며칠전에 라라에를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방광염 증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테라네가 한참동안 하루 종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라라에는 꾸냥이와 테라에게 구박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둘의 타박에 못이겨 항상 구석에서만 지내며 맘껏 놀지도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요즘 한동안 라라에의 보호막이 되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 큰 스트레스 였었나 봅니다. 겉으로 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듯 했었습니다. 많이 칭얼대고... 평소에는 오랫동안 숨어 있고요.
소변을 미리 받아가서 소변 검사를 했습니다. 염증이 조금 보이는 것 이외에... 피도 검출되지 않았고 pH도 정상이었으며 뇨비중도 정상.... 그 외 거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습니다. 안심을 했습니다.
의사의 권유로 초음파 검사를 했습니다. 어려운 검사가 아니기에 받아들였습니다. 검사 결과 요도에서 약간의 염증이 보였고 방광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신장이 부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면 왼쪽 신장은 정상 크기였습니다. 혈액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혈액 검사 결과 역시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신장질환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는 크레아틴, BUN 수치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외에 간기능에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담당 수의사님은 방광염만 고치는데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어있는 신장이 걱정된다고 물었지만... 식이 조절을 잘 하면 회복될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다른 검사 결과에서 신장기능이 특히 떨어진다거나 이상이 있다고 보이지를 않았기에 가볍게 여기셨나 봅니다. 저희도 그리 생각했고요.
포도당 수액을 한번 맞을 필요는 있다고 하여 포도당 수액을 맞은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사도 한번 맞고 먹는약도 타오고요.
라라에는 빠르게 회복되더군요. 처음에는 수액 주사를 맞는 부분에 감아놓은 지지대가 불편해 보이는듯 했지만 조금 있으니 그 상태로 여기 저기 돌아다닐 정도록 금방 적응하는 듯 했습니다.
소변 보는데에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밥도 잘 먹더군요.
그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같은 처방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역시 빠르게 회복되는 듯 했고 그 다음날까지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평소에 즐기던 베란다 산책도 즐기고... 화장실 가는 문제도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치료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의사도 그리 권했었습니다. 수액을 몇시간 맞는것 이외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기에 그리 부담될 것 같지도 않았고요.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액을 맞으면서 오히려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몸이 붓는게 보였고 호흡이 가빠지는게 보였습니다. 겁이 나서 수액을 바로 뽑았습니다. 이미 저녁이었기 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날 바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갑자기 기운이 빠진 라라에를 보며 수의사도 당황하는 듯 했습니다. 소변 검사를 다시 했으나... 역시 소변 검사 결과에서도 염증이 조금 보이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이상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이 보였습니다. 왼쪽은 여전히 정상이었지만.... 부어 있던 오른쪽 신장이 정상보다 두배 이상 부어 있었습니다. 신부전을 의심했습니다. 수의사는 신부전이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그냥 신장에 물이 차있다... 는 얘기만 했습니다. 몸이 붓는건 두 신장의 기능이 모두 비정상이고 혈액을 제대로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일텐데... 소변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혈액검사 역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사실... 아마 수의사도 혼란스러웠었나 봅니다. 겉으로 보이는 증세를 봐서는 꽤 심한 신장 질환일텐데... 수의사가 확신을 못하겠는지 진단서를 써줄테니 서울대학 동물병원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진단서에는 소변 검사 결과만 적었습니다. 혈액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었고 소변검사에서 염증이 보인것이 있었기 때문에 소변 검사만 적는 듯 했습니다. 병명도... '일단' 신장이 부어있으니 신장염이라고 적겠다고 했습니다. '일단'이라... 그러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안락사 얘기까지 언급하시더군요. 솔직히... 속으로 웃었습니다.
원인을 물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갔을때에도 바로 뭘 먹이냐고 묻기에 먹이는 음식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정도로 먹인다면 음식은 별 문제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기생충 감염의 가능성도 언급하셨지만... 검사를 하자고는 안하시더군요. 누가봐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을 테니까요.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나 이 홈피를 통해 여러번 밝힌적이 있었는데....
2001년 여름에 처음 라라에를 데려왔을때... 라라에는 새끼 고양이 둘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에 커다란 십자 모양의 흉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라에는 궁디팡팡을 싫어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슴 아래쪽에 손 대는것을 싫어했습니다. 얼굴을 쓰다듬다가 손이 아래쪽으로만 내려가도 짜증을 내며 자리를 옮기곤 했습니다. 저희는.... 아마도 길에서 수컷 냥이들에게 시달림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했었습니다.
싫어하는 정도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라라에는 가슴 아래쪽에 손 대는것을 싫어했습니다.
고양이의 신장 위치는 갈비뼈 아래쪽 등쪽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은 신장은 '오른쪽' 신장이었습니다.
이 생각에 이르자...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리 오랜기간 동안 이것이 라라에의 성격, 혹은 과거의 나쁜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뭔가 질병에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심한 외상으로 인해 신장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오른쪽 옆구리의 커다란 상처가.... 이미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였을까요?
몸에 손대는걸 그렇게 싫어했던 것이... 이미 신장에 문제가 생겨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얘기를 들은 수의사 역시...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수의사는 원인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혼란스러웠겠죠.
서울대학 동물병원에 예약을 했지만 날짜가 2주후에나 잡혔습니다. 아픈 동물들이 많은가 봅니다.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라라에가 더욱 기력이 빠지는 듯 했습니다. 다시 다니던 지역 병원에 문의를 했더니 사정을 말하고 급히 가라고 하더군요. 다시 전화를 했지만 이미 진료시간이 끝난 상황이었고 응급실로 데려가 봤자 당직 수의사들만 있기 때문에 정밀 검사도 불가능하고 수액을 맞추는 이외에는 별 수가 없다... 고 하더군요. 할 수 없이 전화로 증세를 설명하고 상담을 했습니다. 증세를 한참 설명하고 근 30분 가량 통화를 했지만... 이 수의사 역시 아무런 확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신장기능에 이상이 있어보이기는 한데 소변, 혈액검사 결과와 맞지 않는듯 하고... 게다가 증세로 봐서도 신부전증은 아닌것 같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실 별다른 증세도 없었습니다. 첫날 방광염 증세 이후로 별다른 증세가 없었고 상황이 나빠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체력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것 이외에는 겉으로 봐서 별다른 증세가 없었으니까요. 어제 저녁과 오늘만 빼고요.
다시 지역 병원에 문의를 했습니다. 이때는 라라에의 복부가 많이 부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역시 한참을 상담하고... 일단 데려와서 주사제라도 맞추자고 하시더군요.
수의사가 보더니.... 복수가 찬 것 같다고...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습니다. 복수가 찬 것이 보였습니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혈액의 농도에 문제가 생겨서 삼투압 때문에 혈관에서 세포로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증세라고...
그렇다면 신장에 이상이 있는게 확실한데... 소변, 혈액 검사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니 신장기능에는 문제가 없는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긴 하다고 답하시더군요.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혈액검사를 다시 하면 안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직전에 검사를 했었고... 설사 검사해서 이상이 발견되어봤자 할수 있는 처치도 없고(신장이 안좋아서 약이 안 받는 상황이었기에) 어차피 월요일에 서울대학 병원으로 가면 다시 검사를 할테니 하지 말자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력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수의사는 이미 포기한 듯 했습니다.
병원을 나서는데.... 갑자기 수의사가 원인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오기 직전에 저 역시 자료들을 찾아봤지만.... 신부전 증세와도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것 같고... 혹시나 싶어 범백혈구 감소증이나 복막염 증세를 찾아봤지만 이 역시 일치한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수의사가 복막염의 가능성을 말했습니다. 복막염으로 인해 신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복막염?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기 전에 복막염 증세가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2년 6개월 동안 아주 서서히 병이 진행되어 이제서야 갑자기 심각해진 것?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요 근래에 복막염에 걸린것일까요? 요 며칠 병원에 다닌 것 이외에는 밖에 다닌 일도 없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막염 검사를 하자고는 안하시더군요. 역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는 않은듯 했습니다.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점점 기운이 빠져가는 라라에를 보았습니다. 몇걸음 걷던 걸음 걸이도 차차 줄어들더니... 곧 걷지 못하게 되버렸습니다. 자리에 누운상태로 조금씩 기어가더니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더군요. 기어가던 방향은 화장실 방향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찬 바닥에 누워서... 가끔씩 다리를 움직이며 자세를 바꿔 잡을 뿐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기력이 점점 빠지는지... 자세를 바로잡지도 못하기 시작했고.... 고개를 점점 땅에 붙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라라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수의사가 안락사를 언급해도 비웃었지만.... 급격히 변해가는 라라에를 보며 실감해야만 했습니다.
완전히 바닥에 누워버린 라라에를 보며... 갈피를 못잡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보내야 하나? 아니면 살 수 있다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하나?
뭘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면 나쁜 생각만 계속 떠올라서 집안일을 시작했습니다. 라라에는 옆에 두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평소처럼 꼬리를 살짝 흔들어 주었습니다. 비록 그 폭은 작았지만...
문득... 이렇게 라라에를 바닥에 뉘여 놓고 있다가 라라에의 마지막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느껴졌습니다.
기운이 빠져 축 늘어진 라라에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라라에의 호흡이 느껴지자... 오히려 불안감이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분 정도가 흐른 후에... 큰 숨 몇번, 작은 떨림이 이어지고... 라라에의 호흡과 제 호흡이 일치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라라에의 호흡이 멈췄습니다.
눈물이 터져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침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라라에를 닦아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수건을 챙겨오고... 라라에를 묻어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주 신속히...
그리고는 근처 산에 라라에를 묻었습니다.
지금은 제 자신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너무나 담담히.... 마치 남 얘기를 하듯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실감을 못하기 때문일까요?
가끔씩 가슴이 터져오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 폭발을 억제하고 잠시 흐느끼고 말 뿐입니다.
감정을 터트려 감정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감정을 쌓아두는 것에 익숙하게 살아온... 그런 남자라는 것이 참 싫습니다.
그렇게 빨리... 라라에를 보내고 라라에를 묻고...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밀검사도... 서울대학교 동물병원도 다 소용 없게 되버렸습니다.
라라에를 보내며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그리 말했습니다.
하지만... 라라에가 사랑해준 만큼 라라에를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라에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